나도 모르게 재벌 3세와 결혼했다
구청 창구에서, 스물두 해를 혼자 살아온 여자가 처음 듣는 말. "이미 혼인신고가 되어 있는데요? 중혼은 범죄라는 걸 모르십니까?" 남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조차 없는 강유나에게, 이미 남편이 있었다. 혼인관계증명서의 흑백사진은 잉크가 번져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고, 그 아래 적힌 이름 석 자만 또렷했다. 이현. 이건 그룹을 손에 쥔 스물여덟의 대표. 재벌 3세. 그리고 그 남자 역시, 그녀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. "강유나 씨, 그 증명서 진짜입니까?" "저를 모르세요?" 두 사람이 잃어버린 것은 2년 전 그날 밤 하나뿐. 그날 두 사람은 분명히, 제 손으로 서명을 했다. 사생아라 불리며 자란 집. 그녀의 자리를 대신 살아온 언니.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어머니. 이름조차 불러주지 않는 아버지. 그 지옥을 걸어 나온 유나가 숨겨온 이름은, 수소에너지의 '서 박사'. 세상 모두가 그녀를 몰라볼 때, 딱 한 사람이 그녀를 알아본다. 기억이 흐려져 가는, 이 집안의 최고 어른. "손주며느리! 네가 우리 손주며느리구나." "저 정말 할머니 손주며느리 아니에요." "맞아. 네가 내 손주며느리야." 지워진 기억은 사고가 아니었다. 그날의 불길도, 혈관을 타고 들어온 약물도, 누군가가 설계한 것이었다. "이혼하겠습니다." "이혼할게요." 그렇게 서로를 밀어내던 두 사람은, 잃어버린 하룻밤을 되찾아 갈수록 서로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. "이혼 신청은 보류하겠습니다." "기억이 흐린 날에도, 곁에 있겠습니다." 기억나지 않는 결혼. 그러나 그날, 우리는 분명히 서로를 선택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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